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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요리와 민간조사 제도 도입보안단상
이병관 | 승인2018.06.20 19:20

설원을 달리는 열차에서 한 남자가 살해 당한다. 폭설로 멈춰버린 열차 속. 아무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립탐정 포와로는 사건해결에 착수한다. 잘 맞춰진 모자이크처럼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 승객들의 엇갈린 증언으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드는데, 포와로는  사소해 보이는 증언의 오류와 단서들을 검증하며 사건의 전모를 추적해 나간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열차 살인'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 포와로는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조사하는 유형의 탐정이라기 보다는 사건에서 얻은 작은 단서를 특유의 사색방법으로 추리하는 일명 ’안락의자형’ 탐정이다. 탐정 포와로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여러 편의 소설에 등장하여 어려운 사건들을 추리하고 추적한다. 포와로는 에드거 앨런 포의 오귀스트 뒤팽, 코난도일의 셜록 홈즈와 함께 추리소설에 등장한 세계3대 탐정 중 한 명이다.

이런 탐정소설을 읽으며 청소년들은 아마 한번쯤은 탐정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봤을 것이다. 꿈 속에 가져봤을 탐정이라는 직업이 곧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탐정은 범죄 혹은 실종자 찾기, 보험사기 등 개인이나 단체의 절박한 요청에 전문적인 조사와 정보제공으로 도움을 주는 직업이다. 경찰과 같은 치안행정기관이 위와 같은 요청에 부응하며 활동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들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우선해야 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국민 개개인이나 사기업의 요구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일일이 제공하기엔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 사기, 배임, 횡령, 등 사적(私的)성격이 강한 재산범죄사건, 미아, 실종 사건 등은 강력범죄나 공공의 영향이 큰 사건의 후순위가 되기 십상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공익과 사익간의 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치안행정 측면에서도 치안보조재로서의 장치가 필요하다. 그 장치가 탐정, 즉 민간조사인 것이다.

탐정제도 즉, 민간조사제도를 금지하는 나라는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4개 국가 중  우리나라뿐이다. 민간조사제도를 오래 전 도입한 국가들의 민간조사기업들은 개인 간의 분쟁 시 증거조사뿐만 아니라 기업 간 M&A관련 조사, 기업정보 및 해외시장 위험성 조사, 경호경비, 정보보안, 보안컨설팅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을 날로 확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기 위해서나 배우자의 부정행위 등 여러 이유로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심부름센터나 흥신소는 단순 대행업무에서 벗어나 개인 뒷조사·개인정보유출·불법위치추적 및 도청 등 사생활 침해행위는 물론 속칭 폭력을 동반한 해결사 역할까지 함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례들이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사회적 수요가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불법적인 면만 바라봐선 안 된다. 실제로 일상적인 사업자 간 투자와 거래활동에서 사실관계와 거래안전성을 보장받기 위한 거래처 조사와 위험성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제공이 필요할 때가 많다. 실제로 해외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해외 탐정을 고용해 정보제공을 받고 있기도 하고  우리나라 정부기관과 예금보험공사 등 공기업들도 해외 은닉재산을 찾기 위해 해외 탐정을 고용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금지하기 보다는 제도권에 수용해 하나의 산업으로 육성하는 게 맞다.

민간조사제도 도입 관련법안은 1998년 당시 한나라당 하순봉의원이 ‘공인탐정법’이란 이름으로 처음 발의한 이래 여러 차례 발의되었지만, 임기만료로 법안이 자동폐기 되는 등 꽉 막힌 고속도로처럼 가다서다를 반복해 왔다. 현재 윤재옥 의원의 경비업법 전부개정안과 송영근 의원의 민간조사업법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 각각 계류되어 있지만, 19대 국회도 내년 3월에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법안통과는 불투명하다.

법안이 10여년동안 표류한 이유는 민간조사업법의 제정으로 설립하게 될 조사업체의 인권침해문제, 수사의 사유화 문제 등 그리고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변호사법 등 관련법률들의 개정 등 정비의 어려움과 더불어 검찰 경찰 등 국가기관들이   감독기관을 누가 맡을 것인가를 두고  ‘제 밥 그릇 챙기기’같은 기관 간의 알력이 한 몫 했을 수도 있다.

2014년 3월 18일 정부의 신직업육성추진계획 발표가 있었고  육성해야 할 신직업에 민간조사가 포함돼 그간 말만 무성했던 민간조사제도 도입이 속도를 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많이 했지만, 소관부처 조정의 어려움과 법무부와 경찰 등 관련부처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여전히 도입이 지연되어 왔다.

가뭄 속에 단비가 내리 듯, 올해 7월 변호사단체 등 여러 기관의 민간조사업법 제정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민간조사업 금지는 해제하고 관리법률은 제정해야 한다’라는 슬로건 아래 경찰청 수사연구관실에서 ‘민간조사정책알리미 블로그’를 개설해 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찰은 자체조사결과 법이 제정되고 민간조사제도가 활성화되면 1만 5천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검찰, 경찰 등 전직 수사요원들과 정보조사업무에 숙련된 기자출신들도 직무수행으로 축적된 노하우를 발휘할 기회를 민간조사제도 도입을 통해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론보도를 통해 말하고 있다.

제도도입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인된 조사전문가로부타 양질의 사실조사 및 정보제공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더불어 일자리창출의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민간조사제도를 하루라도 빨리  도입하고 전문적인 조사인력양성과 서비스를 육성함으로써 개인에 대한 수요뿐 아니라 글로벌 사업을 하는 기업들과 한국진출 해외기업들의 수요에도 부응해야 한다. 계속 미루고만 있다가는 해외민간조사기업들에게 시장만 빼앗길 뿐이다.

모든 제도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부작용만 걱정해서 필요한 제도 도입을 미뤄선 안 된다. 교통사고가 난다고 자동차 운전을 모두 금지할 필요는 없듯이 말이다. 경찰청 민간조사 정책 알리미 블로그에 수록된 「민간조사업 관리체계의 입법정책 방향」(경정 나영민 저(著))의 마직막 맺음말에 이렇게 적혀 있다.

“치명적인 독을 가진 복어도 전문조리사가 안전하게 독을 제거하고 요리하면 천하일미의 복어요리를 즐길 수 있다.”

적절한 비유다. 10여년째 떠돌고 있는 민간조사제도 도입 문제 역시 사회에 이로움이 될지 해가 될 지는 제도를 운영하는 전문가들의 요리실력에 달려있다.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는 이미 충분한 요리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민간조사제도!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면 한다.

이병관  bngkwn9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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