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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인터뷰] 왜 한국이었는가?지리적으로 떨어져도 마음만은 한국에 가까이 있다는 터키 기자의 한국견문록
최민철 기자 | 승인2019.11.19 17:20

한국에서 5년 체류한 후 잠시 캐나다로 넘어왔다. 캐나다로 떠났지만 한국 관련 기사-평론-기고는 계속하고 있다. 내가 지금 한국에 없어도 한국을 가까이서 주시하는 것이 나의 팔로워들에게 의구심을 남긴 듯하다. 거리가 멀어졌다고 해서 굳이 관심을 끊을 필요까지 있을까? 어느 정도 팔로워와 독자들과 같은 구성원의 수가 충족된 온라인 매체를 중도에 폐쇄하는 것도 옳은 처사는 아닌 듯하다. 나는 이 일을 스스로 좋아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끌어 나간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도 혹시 한국 바라기가 된 건가?"라고 물은적이 있다. 한국에 갈 때까지 그 곳에 대한 어떤 생각도 없었고 머리속에는 동방 국가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서울에 내리면서 나는 기대 이상으로 현대적인 도시와 마주하게 되었다. 마치 동방 국가가 아니라 서방 국가에 간 것 같았다. 그 전에도 13개 나라를 다녀봤지만 그들 중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로 한국을 꼽는다. 

살면서 위험부담을 받아들이기를 좋아하고 질식하더라도 계곡이 아닌 큰 바다에서 질식하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발륵케시르대학교(터키 발륵케시르 소재)를 졸업하고 큰 바다가 있다는 이스탄불을 택했다. 이스탄불 다음에 일하면서 살고자 하는 곳은 분명 터키 이스탄불보다도 마르마르 해협보다도 더 큰 장소여야 했다. 이스탄불에서 질식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태평양에서 어떻게 될지를 지켜보자는 의도였다. 극동지역 다음으로 스스로를 위해 또 한 번 도전해야만 했다. 이번에는 극동지역에서 극서지역으로 이동해 캐나다와 첫인사를 했다.

서울 일화로 다시 돌아오자면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내딛자마자 놀라움과 함께 낯설었던 문화권에 있는 외국으로 오게 되었음을 느꼈다. 어느 순간에는 '한국에 오기를 잘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국인이 따뜻한 정으로 맞아줌과 동시에 마음속의 얼음은 녹아내렸다. 한국인은 조금 수줍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면식을 치른 후에는 아주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 

한국음식의 주재료인 마늘, 계란, 생선, 김 등의 냄새가 자극적이었다. 그렇다고 설탕, 소금, 기름이 전혀 없는 음식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더 잘 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의 삶은 빨리 흘러갔다. 늘 급하게 바쁘게 움직였다. 적응하는 것은 알고 지내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여기고 시민들의 삶에 녹아들고자 하였다. 복잡함의 일부가 되었다. 버스와 전철에서도 고속인터넷의 혜택을 보며 한국 관련 기사, 칼럼, 기고 등을 읽고 흥미롭다고 여겨진 부분은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공유하기 시작했다. 필요에 의해 한국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한국을 알아나갈수록 한국이 더 좋아졌다.

한국인들에게 거울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몇 시간동안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한다. 주머니에 보면 거울과 화장품 역시 빼놓지 않고 다닌다. 한국은 나에게 거울과 같은 곳이었다. 간간이 맞은편에서 스스로의 매무새를 다지곤 했다. 한국이 1950년대에 완전히 황폐화된 나라였음에도 오늘날에는 세계 경제에서도 열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이다. 꿈을 이루고 성공하는 데에 있어서 한국사는 나에게 동기부여를 시켜준다. 또한 한국의 성공은 사람들에게 뿐만아니라 여러 나라에도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고 할 수 있겠다. 기술과 교육에 투자하여 항상 최선을 노력을 이어나가는 한국이다. 

한국이 내가 외롭고 고립된 생활을 했을 때에도 나에게 올곧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강이 한국에 생명을 준 것처럼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어진 자전거 도로가 걸어가는 한이 있어도 목표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을 주었고, 한강처럼 인생이 계속 흘러간다는 교훈까지 일러주었다. 한국에서의 고속열차여행을 통해 삶이 나에게 얼마나 빨리 흘러가고 수많은 노선(서울에 12개가 넘는 철도 노선이 있음)을 제시할 것이며 스스로를 위해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이상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일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이지 한국 전철과 기차는 시간을 준수하고 퇴근길조차도 복잡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나에게도 빠르고 제 시간에 움직일 것을 당부했다.  

서울은 안전한 도시였다. 밤 12시 이후에도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자전거로 산책하거나 아침까지 열린 카페에 가서 커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은 장소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거의 모든 장소에 인터넷 연결이 가능했다. 술을 많이 마셔도 선을 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매일 물고기를 주기보다 낚시하는 방법을 한 번 알려줄 필요가 있다."라는 격언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선생님으로서 누군가에게 낚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낚시하는 법을 안다고 해도 낚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다. 진정으로 그 사람이 낚시줄을 직접 잡을 때까지 물고기를 낚을 수는 없는 법이다. 서울은 나에게 그 낚시줄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은 내 기억속에서 새로운 문과 기회를 열어주었다. 내가 의구심없이 캐나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큰 영향을 미쳤다.

서울에서 홍차에 설탕을 넣는 습관을 끊었다. 한국인처럼 건강한 식습관을 갖기 위해 소금, 기름, 밀가루 비중을 줄였다. 이제 홍차에 넣는 설탕, 음식 간을 맞추기 위한 소금과 기름이 없어도 더 맛있게 식사할 수 있다. 서울을 떠나온 직후 음식만 맛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역시 즐겁다. 한국, 나는 그대를 내 혀가 닳을때까지 계속 설명할 것이고 이해해 나갈 것이다. 어느 가을의 절정에서 마지막 인사와 함께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약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11월 15일 온라인 매체 'Kore Gazisi'의 작가 겸 관리자 Gazi Felek에 의해 터키어로 게재된 글을 한국어로 번역 후 재편집/재연재되었으며 저작권은 아래 출처에 있습니다.

원문출처: http://www.koregazisi.com/kendimle-roportaj-neden-kore/

최민철 기자  mincheol.choi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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